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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칼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사승인 2019.09.18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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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이상을 쫓는 삶은 낭만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을 쫓는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므로 모험일 수밖에 없다. 개인이 모험을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자유이다. 그러나 오천만을 모험의 길로 이끌겠다는 현 정권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막시즘의 길로 가보자 라고 한다면 막시즘으로 번영한 나라, 행복한 나라를 인류사(人類史) 중에서 샘플로 오천만 앞에 보여주면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막시즘을 시행한 나라마다 번영한 나라는 이 지구상에 어디에도 없다.

혹시 중국을 논할 수 있다. 그 나라는 자유가 없다. 철저한 통제사회이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캠퍼스내 선별적인 구역에 안면인식 시스템을 설치해 학생들의 동태 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그 조치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다. 중국의 난징 약학 대학은 안면인식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카메라를 설치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설치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전 국민의 안면인식 시스템으로 통제할 수도 있는 나라이다. 조금 더 발전하면 한 국민의 신상이 단번에 파악될 수 있는 앱이 개발되어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인권과 자유는 안중에도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런 나라를 따를 것인가? 고난의 행군에서 수십만 인민이 아사(餓死)하는 북한을 따를 것인가? 한 사람이 수십년 정권을 잡고, 휘두르는 러시아를 따를 것인가? 몰락한 동구라파의 공산 국가를 따를 것인가? 그런데 실패와 최빈국의 뒤를 따르자고 현 집권층이 종용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오늘의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고 하며, 마치 적화통일에 동조하는 것같은 인상을 준다.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길이다.

저소득층의 민심을 잡기 위해 의적 일지매나 홍길동처럼 의로운 지도자로 화장을 하고, 자본가의 가슴에 죽창을 찌르고, 법과 제도를 통해 강제 공정분배를 하고자 하고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다.
물론 현재의 빈부의 격차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그러나 부한 자의 부를 빼앗으면 부하고자 하는 동기를 상실하게 한다. 부하고자 하는 동기가 꺾이면 투자할 이유가 없다. 투자가 되지 않으면 소비도 위축이 되며, 노동자의 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약 공정한 분배와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면 법과 제도를 할 것이 아니다. 국민정신 개조와 종교와 교육으로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기회균등과 공정한 분배, 정의로운 사회를 법과 제도로 만들면 인간의 창의와 역동적 투자와 산업의 융성은 불가할 것이다. 가난함과 부함이 상대적인 현실이 아니라 다변적인 삶의 양태일 뿐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는 자연스러운 자유경쟁의 시대를 여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바른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미 다 경험한 바가 있다. 칼 막스의 이상을 꿈꾸는 공산선언문이 언제나 괴팍한 권력자의 칼이 되어 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수많은 생명이 죽어갔다. 스탈린의 막시즘은 스탈린을 위한 전제주의에 이바지했을 뿐 이로 인하여 희생된 노동자의 생명이 7,000만명이 넘는다. 노동자를 위한 혁명이 노동자를 죽였다.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가 전쟁보상금에 짓눌려 희망 없이 사느니 차라리 총칼을 들자고 했지만, 정신이상자인 히틀러의 광기에 죽은 사람의 숫자가 얼마이던가? 이상은 이상이다. 비현실적인 현란한 논리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면 안된다.

한반도 5,000년 역사에 오늘 같은 풍요와 자유와 번영을 누려본 역사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현재를 현재 되게 한 동기와 절차와 과정을 면밀히 연구하여 보다 나은 이데올로기로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국민들이 안정적이고, 불안하지 아니하며 쌓아온 탑을 헐지 말고 그 탑 위에 더 잘 쌓아 올라갈 때, 더욱 믿을 만한 희망이 될 것이다.

무리하거나 급격한 통일을 위한 정치는 오히려 상대를 불안하게 한다. 통일에 무관심하면 오히려 안심을 할 것이다. 통일을 논하는 것은 결국 어느 한 상대가 소멸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연방제를 논하지만 현재 남한의 권력 다툼을 보면 가능할 수가 없는 비현실적 논리에 속하는 것이다. 일찍이 남노당의 고 박헌영이란 천재가 주장한 그 주장에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권이 없다.

다만 통일이라는 명제에 눈이 어두워 국민의 행복권과 자유를 무시한 발상이었다. 이상한 이단 종교집단 같은 북한의 연방은 생각조차 할 이유가 없다. 겨레가 우선인가? 나라 우선인가를 논한다면 나라가 우선이다. 이제는 세계가 한 식구이다. 겨레란, 혈통을 주장하고, 핏줄의 고유성을 절대가치로 주장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생각이다. 머지않아 이 나라에 한 민족이 아닌 이민족이 대다수가 될 수도 있다.

한민족 자체가 자녀를 생산치 아니하는데 영원히 번창하리라는 예상은 불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를 앞세우고, 나라의 기원도 바꾸려 하는 작태는 무리한 통일이념에서 비롯된 억지시도이다. 지금 국민들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정부의 선심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특정타수의 국민들은 이민까지 생각하고 있고, 현재의 정책 방향을 보고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특히 기독교 신도들은 이 방향으로 가면 신앙의 자유가 박탈된다는 우려 속에 교회마다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데 국민들이 나라를 고민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안정된 정치가 아니며, 신임을 받지 못하는 정권이며, 불안을 조성하여 자기 뜻대로 끌고 가려는 일방적인 리드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국민의 행복을 위한 진로만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부천신문 puchonnp@chol.com

<저작권자 © 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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