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해방을 하였느냐? 해방을 받았느냐를 물으면 우리는 해방을 받았다고 답해야 옳을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세움과 독립을 위한 헌신을 간과해서가 아니다. 국내외 애국선열들의 조국 광복을 위한 살신성인 한 것을 무시해서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세계 2차대전에서 전범국가 일본의 항복으로 인하여 얻어진 선물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합국에 신탁통치를 받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대한민국도 우리의 힘으로 건국되었음을 긍지로 느끼고 있다.

한국을 두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한다. 왜 기적일까? 조국이 위기를 만나거나 어려울 때마다 세계 기운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데올로기 갈등이다. 누구나 철의 장막이 세워진 것이 이데올로기의 갈등의 유산이 아니냐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데올로기의 갈등 때문에 남과 북이 나누어지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미국, 소련의 갈등이 없었더라면 이미 한국은 없다. 조선 인민공화국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랬더라면 우리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다라고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조국을 평등이라는 허울로 균등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나라가 되었더라면 북한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6.25는 다시 생각조차도 하고 싶은 불행이었다.

그 이후 저렴한 노동력과 국민의 동기가 되어 부지런히 세계를 향하여 나아갔다. 바로 독일로 건너간 광부와 간호사였다. 그리고 원양어선을 탄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이 있다. 원양어선을 탄분들을 잊기 쉽다. 지금도 주로 적도 가까운 나라에서 그 분들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그 다음은 1970년대 초에 베트남 전쟁의 파병이었다. 그 참혹한 전쟁에 나가 생명을 잃어버렸거나 부상을 당했거나 고엽제 피해로 지금도 고통을 당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한국을 산업사회로 이끌게 한 것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6.25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일본의 경제가 재건된 것처럼 베트남 전쟁은 한국의 경제를 재건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베트남 전쟁 역시 특수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그 당시 개통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지도자가 독일의 산업화를 현장에서 청취하고, 아우토반(자유고속도로)를 보고 깨달았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에 피 흘림의 아픔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오늘 산업화에서는 생명줄이었고, 군사력에 있어서도 북한을 견제하는 힘이었다. 그것은 실전을 치러본 군인과 거듭된 훈련만 한 군인과는 차이가 크다. 결국 남한은 북한보다 실전 경험의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소위 오일쇼크라는 경제 한파가 닥쳐왔다. 그 때는 더불어 중동의 개발 사업이 크게 흥왕할 때이다. 이때도 건설인력을 중동으로 송출하게 되었다.

사막의 열사에서 이루어낸 땀 값은 어떤 가치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이다. 그 당시 중동현장에 흘린 땀의 대가로 오일쇼크라는 한파를 녹여낼 수 있었다. 물론 우리의 땀 흘림의 결과이지만, 그 당시 중동의 개발 붐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결코 그 힘은 세계 경제의 위기에 파도에 우리 역시 휩쓸려 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로 인한 국내 내수시장의 확대도 무시할 수 없다. 부동산 경기의 호조가 이어졌고, 에너지의 변화에 의한 주택건설의 붐도 함께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한 민주화 운동 역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기운이 있었다. 노동운동의 효시는 1960년대 초 독일의 EZE기금이 큰 역할을 하였다. 기독교의 성문 밖 교회가 최초의 노동운동의 발상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 도시산업 선교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역시 독일사회의 관심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불행스럽게도 오늘의 노동운동이 지나친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든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건강한 노동운동은 사업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특별한 것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세계 경제가 호조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동반성장을 가져왔으며, 중국의 경제 규모의 성장도 무관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호혜적 시각으로 본다면 주어진 선물이여, 세계 대 기운의 약동에 이끌림을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중요한 혜택이 주어졌다. 먼저 산업화다. 일본으로부터 대일청구권을 수령했으며, 산업전반에 걸쳐 기술 이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수혜를 받았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애국가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마치 온 국민의 고백처럼 가사가 적혀 있지 않는가? ‘보우하사’란 가사이다. 대한민국은 복둥이로 태어나서 복둥이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자본주의의 벨트에 참여한 필리핀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보라.

대한민국만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 유일하게 ‘기적’이라는 낱말을 우리의 발전에 붙이는 것은 매우 뜻 깊은 것이다. 기적같이 광복이 찾아왔고, 기적같이 6.25를 이겨내고, 기적 같이 경제대국을 이루고, 기적 같이 민주주의를 세웠다. 한국만큼 민주화가 이룩된 나라도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이다.

지금 우리는 뜨거운 기운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적을 개혁이라는 계념으로 새롭게 재평가하고, 성장보다는 분배를, 성공보다는 평등을, 경쟁보다는 평화를, 그리고 민주주의보다는 전제적이기를 바라는 뜨거운 기운이 솟고 있다. 준법보다는 여론으로 이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는 세력이 있다.

기적을 발로 걷어차고, 기적이 오는 파이프마저 단절시키는 이성적인 것 같으나 비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것 같으나 미신을 따르는 광기 어린 훼방이 해방 이후 이 기적을 훼방하고 있다. 그러나 복둥이에게 복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보우하시는 분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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