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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칼럼] 적은 오직 나 자신일 뿐

기사승인 2019.08.07  16: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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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인생을 살다보면 현실이란 많은 적과 나 사이에 항상 전투하며 살고 있음이 삶임을 느낀다. 그러나 현실을 지난 후 돌이켜보면 적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나 자신이 나의 적이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지금은 세계가 한 마당에 살고 있다. 어느 국가나 기업이 완벽하게 자급자족하는 기업이나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서로 통상하고, 각 국가가 생산한 부품을 조합하여 생산을 한다. 그리고 유통마저 전문 유통업에게 맡기기도 한다. 

분업이 보통이다. 농경사회에서나 자급자족이 가능했을 뿐 산업사회로 옮겨오면서 자급자족은 불가능해졌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전 세계가 하나의 벨트로 생산을 한다. 서로 부품을 공급하고, 공급받으면서 세계의 기업들이 자기만의 특허나 노하우를 개발하여 생산한 것들을 조합하여 완제품이 생산된다. 

그러므로 한 벨트에서 자기 영역, 자기 역할을 하지 아니하면 전 세계의 생산 벨트가 정지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세계 무역기구가 있는 것이다. WTO이다. 그러나 이 기구의 역할마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 국가별 패권주의에 사로잡히면 세계의 기구에 협력하지 아니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패전국가의 소용돌이 안으로 끌려 들어가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 시작되었다. 중국은 애써 자기들은 패권 다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자국의 안전을 위한 행위일 뿐이라고 말한다. 일본 역시 일본 군대의 이름은 자위대이다. 그러나 전쟁을 할 수 없는 헌법을 전쟁할 수 있는 헌법으로 개정하고 국제 패권다툼에 진격하려고 한다. 

러시아 역시 군비에서는 세계의 선두에 서 있다. 미국은 논외로 해도 될 것이다. 이러한 패권을 잡으려고 하는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과연 한국호가 어떻게 안전 운항을 할 수 있을까? 이 문제가 당면한 과제이다. 여러 계층과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어느 주장 하나 잘못된 주장은 없다. 현명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중병에 명약이 많고, 의사도 많은 것처럼 눈에 번쩍 띄는 의견 제시도 많다. 그러나 대다수가 나(我)와 타자(他者) 관계론들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서 성찰하는 의견은 흔치 않는 것이다. 생존경쟁이나 패권갈등에는 관계의 문제가 해결책임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시각을 돌려 자아성찰을 깊이 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왜 우리(我)는 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성찰해 보았는가? 역사적으로는 거슬러 올라가서 쇄국정책을 한 과거와 서구화에 발 늦은 처신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은 우리(我) 자신들이 우리(我) 자신들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세계를 보고 한국을 보면 작은 국토 면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가이다. 이것이 가장 큰 아픔이다. 

그 이유는 권력 욕심이다. 현실을 보라. 북한의 김정은은 첫째도, 둘째도 체제유지이다. 즉 자기 권력의 보존이다.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구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념 투쟁이다. 과연 이념투쟁일까? 아니면 권력 투쟁을 하면서 이념이란 가면을 쓰고 싸운다. 정보시대에서는 이데올로기야 말로 가치가 없다. 한갓 삶의 방법론에 불과하다. 삶의 방법론으로 인하여 나라가 쪽이 난다면 이념은 탈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야욕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 자신부터 국가까지 몰락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과거에도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다. 국가 생존이 우선인가? 자신이 권력을 잡는 것이 우선인가라고 물어본다면 권력자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국가 생존이라고 한다. 권력의 탐욕을 감추는 것이다. 권력의 맛에 한번 중독되면 회복이 어렵다. 

항해하는 선박이 해적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공격을 당하는 배 안에서는 누가 배의 키를 잡느냐라는 문제로 내전을 하고 있다면 분명히 이 배는 약탈당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이 표를 많이 얻으려는 것도 국회의원이 되려는 욕심 때문이다. 현 여당이나 야당이나 표가 중요하다. 외적 공격보다 표를 받기 위해서 안에 있는 적에게 공격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이 한국의 현 정권이 퇴진하지 아니하면 외교적 협상도 수출 통제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의 심장까지 잘 알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사방을 돌아보라. 중국 역시 사회주의이다. 중요한 산업은 국영기업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천안문 사태의 수습이나 오늘의 홍콩의 사정을 보면 국민이 국가의 철저한 통제하에 있음을 알게 된다.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도 허수아비 황실을 모시면서 정신적 통제가 교묘하게 이루어진 나라이다. 요즘 일본인의 90%이상이 혐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본의 국기를 보라. 국가적 결의가 이루어지면 하나로 뭉치는 상징이다. 북한은 논외로 하여야 하겠다. 이러한 이웃 국가에 비해 한국은 당쟁이 도를 넘고 있다. 망국적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권력의 탐욕을 버리는 것이 이 나라의 건승케 하는 최선의 길이다. 집권을 위해서 자신의 당의 이데올로기를 기준하여 보수와 진보라하며 국민들 의식 속에 전 정권은 타도해야 할 악덕 정치인으로 의식화한다. 집권자는 자기 뜻이 절대진리라고 주장을 한다. 집권당에 협력하는 것이 애국적 행위라고까지 말한다. 이것이 망국적인 병이다. 이로 인하여 나라를 사분오열 만들어가고 있다. 참신한 인사행정도 없다. 

자기편만을 끌어들인다. 탕평책은 옛말이다. 우수한 인재가 많다. 그러나 자기편이 아니면 등용하지 않는다. 권력 욕심이 없는 진정한 애국인사가 있어도 일할 기회가 없다. 이러한 내적 분열과 갈등이 우리의 참 적이다. 항상 적은 내 안에 있다. 자아를 이기는 것이 모든 적을 이기는 유일한 승리의 비결이다. 

자기 권력의 안녕을 위해 원대한 산업과 훌륭한 인재를 모두 해악집단이나 인사로 몰아간다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자신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든지 능력이 없으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자기가 자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일본의 한국 적대화까지 권력 잡기로 인식하고 이용하고 있다. 내 자신만이 적이다.

부천신문 puchonnp@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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